'2021 여성기업 실태조사' 결과 보니직원 10명 중 4명 퇴직…비정규직 79.3%↓ 여성기업 매출액, 전체기업의 9.8%대진금속의 '주석 튜브'#. 이성란 대진금속 대표는 인체에 무해한 주석(Sn)을 활용해 화장품, 생필품 등을 담을 수 있는 튜브를 생산하고 있다. 1995년 3월 부친의 사업을 이어받아 대구에선 소문난 친환경 금속기업으로 성장해왔다. 사업 초기 제품들은 납으로 만들어져 친환경을 추구하던 이 대표와 부친의 의견 충돌도 있었다고 했다. 2020년에는 화장품 수출업체에 수출용 주석 튜브 2억5000만원 어치를 공급하는 성과도 냈다. 하지만 가격 경쟁력이 뛰어난 플라스틱 제품과 3년째 계속되는 코로나19 상황,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생산설비 고도화와 친환경 용기 재활용을 위한 설비 구축을 계획했지만 자금 조달은 쉽지 않았다. 최근에는 공장 소음으로 민원이 제기되면서 야간 작업을 할 수 없어 제품 납기를 지키기도 어려워졌다. 가까운 주변 지인들은 "차라리 공장을 정리하고 편하게 살지, 여성이 왜 제조업을 하느라 고생이냐"고도 하지만 이 대표는 수십 년 이어온 가업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인근에서 레지던스를 운영했던 여성 경영자 김모 대표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사업에 직격탄을 맞았다. 해외 각국에서 삼성으로 오는 장기체류자를 대상으로 영업을 했는데, 하늘길이 막히면서 발길이 뚝 끊긴 것이다. 매출이 90% 가까이 급감하자 김 대표는 어쩔 수 없이 직원 수를 24명에서 5명으로 줄였다. 그는 "여성이 대표인 기업은 대면 업종이 많은 게 특징인데 코로나로 특히 피해를 크게 입은 업종이 대면 업종"이라고 했다.최근 중소벤처기업부에서는 ‘2021 여성기업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실태조사는 지난해 8~10월 연 매출액 5억원 이상의 여성이 대표인 법인기업 4만7000여곳 중 표본 3000곳을 대상으로 한 것인데 조사 결과가 다소 충격적이다.보고서 내용을 보면 2020년 말 기준 여성기업 종사자(직원) 수가 77만4000명인데 이는 코로나19 상황 이전인 2018년(130만6000명)에 비해 40.7%가 줄어든 것이다. 즉 10명 중 6명만 계속 직장을 다니고, 4명은 회사를 떠났다는 얘기다. 통계가 이직과 퇴직의 비자발성 여부를 담지는 못하고 있지만 2년 만에 40% 이상의 직원이 줄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조사 당시는 이미 코로나19 상황이 1년 가까이 지속돼 경기 위축이 극에 달했을 때라 코로나가 인원 감소에 영향을 줬다는 점을 유추하기가 가능하다. 특히 여성 기업의 비정규직 종사자는 79.3%나 감소했다.2018년과 2020년 매출 5억원 이상 여성기업 인력 변화 추이(출처=여성기업 실태조사)◆여성기업 R&D 직원은 87.2% 감소= 제조업 중에선 섬유·의복 등의 종사자가 2년 동안 72.1% 줄었고, 비제조업에선 대면업종인 숙박·음식점업(-89.9%)과 정보통신업(-81.7%)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11만5000여명이었던 연구개발(R&D) 직원은 1만5000명으로 87.2% 줄었고, 영업·판매·서비스직은 48만명에서 28만명으로 거의 반토막났다.전년 대비 수익이 감소한 여성기업도 절반을 넘는 52.9%로 나타났다. 경영 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요인을 물어보니 전반적 경기침체로 수요 감소(73.7%)가 가장 높았으며, 대외 경제 환경 악화(23.4%), 업체 간 경쟁 심화(17.2%)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경영 악화에 대한 대응 방법으로는 인건비 절감(26.3%)이 가장 응답률이 높았다. 종사자 수가 급감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경영상 어려움을 느끼는 분야는 판매선 확보 등 마케팅 관리(48.6%)가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자금 조달 등 자금관리(35.5%), 인력확보 등 인사관리(25.5%) 순으로 나타났다. 여성기업인이 불리하다고 느끼는 분야는 일·가정 양립 부담(15.9%), 금융업무 수행과정에서 대출 조건 등 불리함(14.5%) 등을 꼽았다. 2020년 국내 설비 투자 경험이 있는 기업은 3.2%에 불과했으며 수출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4.1%에 그쳤다.◆여성기업, 숫자는 많지만 96%는 소상공인= 중기부는 전체 여성기업 수가 277만개로 전체의 40.2%를 차지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고 발표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성기업 중 대기업은 0.01%로 남성기업(0.12%)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반대로 부가가치가 낮은 소상공인 비중은 96.32%로 남성(91.51%)보다 높다. 이 때문에 여성기업의 숫자는 전체의 40.2%였지만 매출액은 전체의 9.8%(551조원)에 그쳤다. 국내 기업가치 1조원 규모의 유니콘 기업 중 여성기업은 컬리 단 한 곳뿐이다.국민의힘의 이준석 대표와 김기현 원내대표가 지난 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무경 의원실 주최로 열린 '신정부 여성기업 정책의 방향과 과제'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최근 여성기업지원법이 개정됐지만 여성기업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중기부의 여성기업 지원 예산은 지난해와 올해 모두 88억원 수준에 머물렀다. 여성기업지원법 상에 명시된 중기부의 균형성장촉진위원회(제6조)는 최근 몇 년간 회의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여성기업의 디자인 개발 촉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제12조)는 의무를 지닌 한국디자인진흥원은 여성기업 지원 특화 프로그램이 전무하다. 스타일테크 유망기업 지원사업 1개에 대해서만 모집 시 우대사항에 여성기업을 포함해 운영하는 정도다.최근의 스타트업·벤처 붐도 여성기업에겐 멀게만 느껴진다. ‘스타트업레시피 투자 리포트 2021’에 나온 지난해 창업자 성별 투자액 비율을 보면 남성 스타트업이 92.4%로, 여성 스타트업은 7.6%에 그쳤다. 지난해 여성 스타트업 총 121곳이 유치한 총 투자금액은 9147억원이지만 그중 컬리(마켓컬리)가 4754억원(52%)으로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기업이면 다 같은 기업이지 굳이 왜 여성기업을 육성해야 하느냐는 목소리도 크다. 하지만 여성기업계에서는 저성장이 계속되고 저출산·고령화로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여성의 경제참여를 늘리기 위해서라도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한국의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2020년 기준 59.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하위권(33위)에 머물고 있다. 특히 여성기업은 여성 고용비율이 남성기업의 2.3배로 높아 고용 창출, 빈곤 감소 등에 기여하는 효과가 있다. 김보례 여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우수 여성인력에 대한 창업가 양성 체계를 구축하고, 자금·판로·R&D 등 정부 정책에 대한 접근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